막내

“엄마, 사랑해요”
“그래, 나도 사랑한단다”
“저 말썽많이 피워서 키우느라 힘드셨죠…
농사지으시며 얼마나 힘드셨어요”

어머니는 막내를 낳은지 31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셨다
평상시 통화는 채 1분도 안되어서 끝났지만, 이날은 시간 제약없이 통화를 했다

얼마전 태어난 둘째 아이의 아빠인 막내아들은 어리광을 부렸다
그날 밤 어머니는 잠을 설치셨다고 한다
아마도 벅찬 감동에, 기쁨에 그랬으리라…

막내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은 철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이 말에 공감한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지만도 않은 듯 하다

때로는 동생은 윗사람의 입장에서 조언을 할수도 있고,
형은 아랫사람처럼 충고를 따를 수도 있다
아니면 환경이 인격을 변화시켜서
동생이 오히려 형보다 사고나 인생 폭이 깊을 수도 있겠다

지난 화이트데이,
퇴근시간 즈음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둘째 형, 저녁 같이 먹자”

뜬금없는 전화였지만 반가웠다
녀석은 큰형 한테도 전화를 한 듯 하다
일이 바쁜 형은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회사 근처 해장국 집으로 갔다
소주를 마시며 지난 얘기들을 했다
나는 예전의 어려웠던 시절을 맞추어 얘기를 풀어나갔다

“고등학교 시절, 가출했을 때 어디에 있었니?
그때 목사님, 어머니, 나, 네 친구들이 너 찾다가 포기했다”

지질이 말 안듣던 녀석을 몇대 때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 날 막내는 사라졌고, 3박 4일 동안 보이지 않았다
이후 난 때리는 것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이 생겼고,
누구에게도,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형, 실은 그 당시 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받쳐주지 못하는 가정 현실이 불만이었어…
현실을 받아 들일 수가 없었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부족함 없이 자랐던
막내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 생활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너 혹시 아는지 모르겠구나.
겨우내내 얇은 잠바 한벌로 몇년을 지내오신 어머니를 본 적이 있니…”

어머니는 하루 온종일 뙤약볕 벌판에서 일해서 인건비도 안나오는 2~3만원을 벌었다고
그러면 넌, 그 당시 5천원이나 하는 음악테이프를 엄청나게 사댔다
그렇게 사 모은것이 라면박스로 3박스가 넘었다

“아무렇지 않게 명품 기타를 사댔고, 부수기도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락밴드에 가입해서 그런 생활을 계속했었지
그러다가 대학생활도 때려치웠지…”

녀석은 크게 후회하는 기색이다

“형, 그때 정말 철이 없었어…
어머님이 그런 줄도 몰랐어”

고개를 떨군다

“그때 나도 얼마나 힘들었는줄 아니
큰 형은 재수한다고 서울로 갔고,
너는 사고 치고 말썽 피우고…”

나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실질적인 가장이었고,
가장의 역할을 다해야했다
솔직히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들판으로 나가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졸업반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농부의 삶,
그것이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막막해서 앞이 보이지 않았고,
살기위해 했던 삶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고,
이제 삼형제는 서울 수도 한복판에서
직장거리도 멀지 않은 곳에서 각각 근무하고 있다

“형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단다.
시골에서 삽, 호미를 들고 일해야 할 내가
어울리지 않게 양복에 넥타이라니 말이다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않니?”

“나는 큰형, 작은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세상에 형 같은 사람들 없더라구…”

이렇게 저렇게 잔을 기울이며 형제는 취해갔다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대화의 주제는 나와 관련 된 것으로 바뀌었다.
넘어간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면서도 대화는 이어졌고,
중간에 내가 내리는데, 녀석이 웃으며 응원한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낸다
누군가와 오랜동안 통화를 하고 싶은가보다…

(추가설명)
막내는 대학생활 청산 후 군대를 갔다.
제대 후 시험을 치러 소방공무원이 되었다.
소방출동, 응급구조대원으로 몇 년을 근무했다.
현재는 ㅊㅇㄷ에서 근무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출퇴근시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볼라치면 내 동생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2005년 3월 어느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