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엄마, 사랑해요”
“그래, 나도 사랑한단다”
“저 말썽많이 피워서 키우느라 힘드셨죠…
농사지으시며 얼마나 힘드셨어요”

어머니는 막내를 낳은지 31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셨다
평상시 통화는 채 1분도 안되어서 끝났지만, 이날은 시간 제약없이 통화를 했다

얼마전 태어난 둘째 아이의 아빠인 막내아들은 어리광을 부렸다
그날 밤 어머니는 잠을 설치셨다고 한다
아마도 벅찬 감동에, 기쁨에 그랬으리라…

막내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은 철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이 말에 공감한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지만도 않은 듯 하다

때로는 동생은 윗사람의 입장에서 조언을 할수도 있고,
형은 아랫사람처럼 충고를 따를 수도 있다
아니면 환경이 인격을 변화시켜서
동생이 오히려 형보다 사고나 인생 폭이 깊을 수도 있겠다

지난 화이트데이,
퇴근시간 즈음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둘째 형, 저녁 같이 먹자”

뜬금없는 전화였지만 반가웠다
녀석은 큰형 한테도 전화를 한 듯 하다
일이 바쁜 형은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회사 근처 해장국 집으로 갔다
소주를 마시며 지난 얘기들을 했다
나는 예전의 어려웠던 시절을 맞추어 얘기를 풀어나갔다

“고등학교 시절, 가출했을 때 어디에 있었니?
그때 목사님, 어머니, 나, 네 친구들이 너 찾다가 포기했다”

지질이 말 안듣던 녀석을 몇대 때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 날 막내는 사라졌고, 3박 4일 동안 보이지 않았다
이후 난 때리는 것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이 생겼고,
누구에게도,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형, 실은 그 당시 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받쳐주지 못하는 가정 현실이 불만이었어…
현실을 받아 들일 수가 없었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부족함 없이 자랐던
막내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 생활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너 혹시 아는지 모르겠구나.
겨우내내 얇은 잠바 한벌로 몇년을 지내오신 어머니를 본 적이 있니…”

어머니는 하루 온종일 뙤약볕 벌판에서 일해서 인건비도 안나오는 2~3만원을 벌었다고
그러면 넌, 그 당시 5천원이나 하는 음악테이프를 엄청나게 사댔다
그렇게 사 모은것이 라면박스로 3박스가 넘었다

“아무렇지 않게 명품 기타를 사댔고, 부수기도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락밴드에 가입해서 그런 생활을 계속했었지
그러다가 대학생활도 때려치웠지…”

녀석은 크게 후회하는 기색이다

“형, 그때 정말 철이 없었어…
어머님이 그런 줄도 몰랐어”

고개를 떨군다

“그때 나도 얼마나 힘들었는줄 아니
큰 형은 재수한다고 서울로 갔고,
너는 사고 치고 말썽 피우고…”

나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실질적인 가장이었고,
가장의 역할을 다해야했다
솔직히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들판으로 나가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졸업반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농부의 삶,
그것이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막막해서 앞이 보이지 않았고,
살기위해 했던 삶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고,
이제 삼형제는 서울 수도 한복판에서
직장거리도 멀지 않은 곳에서 각각 근무하고 있다

“형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단다.
시골에서 삽, 호미를 들고 일해야 할 내가
어울리지 않게 양복에 넥타이라니 말이다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않니?”

“나는 큰형, 작은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세상에 형 같은 사람들 없더라구…”

이렇게 저렇게 잔을 기울이며 형제는 취해갔다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대화의 주제는 나와 관련 된 것으로 바뀌었다.
넘어간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면서도 대화는 이어졌고,
중간에 내가 내리는데, 녀석이 웃으며 응원한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낸다
누군가와 오랜동안 통화를 하고 싶은가보다…

(추가설명)
막내는 대학생활 청산 후 군대를 갔다.
제대 후 시험을 치러 소방공무원이 되었다.
소방출동, 응급구조대원으로 몇 년을 근무했다.
현재는 ㅊㅇㄷ에서 근무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출퇴근시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볼라치면 내 동생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2005년 3월 어느날 씀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사진 찍는 기회가 많아졌다

기술발전으로 해상도는 점점 높아져 간다
사진을 찍을라치면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바로 얼굴에 난 흉 자국 때문이다

좌측, 우측에 가늘고 기다랗게 줄 자국이 있다
턱 바로 아래에 몇 바늘 꼬맨 자국이 있다
처음 대면하는 사람은 쉽게 보아 넘기기 힘들다
재밌게도 주먹쓰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그것과 관련된 사건을 물어오기도 한다
꽤나 사고치고 놀다가 생긴 것인양…

가물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것은 전부 시골에서 얻은 것이다

그 당시 어릴 적에는 딱히 놀이터가 없었다
농터가 놀이터요, 농사일이 놀이였다
그래서인지 아주 어릴 적부터 농사일을 거들었다
작은 몸집에 하우스 일을 하려니 힘이 부쳤다
비닐하우스는 속이 빈 쇠 파이프로 짓고,
그것들끼리 철사로 이어준다
그리고, 그 위에 비닐을 씌워서 만든 것이다

문제는 철사에 있었다
서투른 아이가 철사로 작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찔리기도 하고, 긁히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그러다가 얼굴에 예리하게 선이 그어진다

요즘에는 흉이 남지않는 연고가 흔하다지만
그 당시 부모님은 이에 관심도 없고,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냥 아물기를 기다리며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이다
장난기가 다분했던 나는 얌전히 아물기를 기다리지 않았고,
구르기도하고, 물도 묻히고, 덧 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덕지가 떨어지면서 흉이 되어갔다

신체가 점점 커지면서 그것도 커져 갔다
그것이 나에게 핸디캡이 될 수도 있었다
대면할때 분명히 거부감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떳떳하게 행동했고, 많은 노력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회사 면접을 보거나,
여자분과 선을 보거나,
사람들을 만나볼 때 자신감있게 행동했다

나는 그것이 핸디캡이 아닌 자랑스런 표상이 되게 하고 싶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성형을 통해 멋지고 예쁘게 만들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인격과 진심은 인위적으로 만들수가 없기 때문이다

 

산과의 대화 – 모든 것을 버리라

산과의 대화

지은이: 박남규

네 것은 하나도 없다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내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네

재물, 자동차, 직장, 친구, 지식, 명예 등
심지어 가족도 내 것이 아니라고 하네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라고 하네

욕심을 갖지 말라고 하네
소유를 하지 말라고 하네
모든 것을 버리라 하네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라고 하네

산이 그랬다
네가 있기 훨씬 전부터 그렇게 있었다고…

설령 네가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한들,
그렇게 있었던 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욕심갖지 않으려 한다
나는 소유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그렇게 있도록 버려야 한다
그냥, 그렇게 있도록 놔두어야 한다

 


오래전 지리산 종주할 때 일이다.
고민과 복잡한 생각이 있던 차에 3박 4일을 주구장창 산을 탔더랬다.
산이 거짓말처럼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신기했다.
내면의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조용히 그렇게 답을 해주었다.

선녀와 나무꾼

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
지은이: 이정하
슬픈 사랑아
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네
내 가진 것은 빈손뿐
더 이상 그대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네
세상 모든 것이 나의 소유가 된다 하더라도
결코 그대 하나 가진 것만 못한데
슬픈 사랑아
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
더 이상 그대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네
주면 줄수록 더욱 넉넉해지는
이 그리움밖에는

그대의 눈을 그리어 봅니다.
제대로 그려야 할텐데

그대의 코를 그리어 봅니다.
제대로 그려야 할텐데

그대의 입술을 그리어 봅니다.
제대로 그려야 할텐데

그대의 턱을 그리어 봅니다.
제대로 그려야 할텐데

그대의 얼굴을 그리어 봅니다.
제대로 그려야 할텐데

도대체 그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지금 이순간에도
그대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다시눈으로 보고
손으로 따라가야만이
생각이 새록새록 날 듯 싶습니다.

아무리 내 머리와 기억력을 탓한다해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는
바.보.
그 자체인 듯 생각듭니다.

나의 시간을 저당 잡힌 듯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늘 그대 허락을 구한다오

마치 태아로 이어진 엄마와 아이처럼
자꾸 따라가다보면 그대가 나온다오

그대 가슴 저미지 마세요

나를 욕해주세요
제발 옷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세요
이제 제발 놓아달라고…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고…

나를 욕해주세요
욕심많은 나무꾼
이룬것도 없으면서
추억만을 바라고 사는 사기꾼 같은 사람

이제 애꿎은 생각들을 도끼로
쩌억하고 갈라버리고 싶습니다.

나는 그대의 말대로
해줄수도 없는
할수도 없는
그런 인간입니다.

그대는
항상 맑게 웃는 선녀입니다.
선녀가 변해서 수선화가 되었습니다.

평생 수선화 향기를 품고 살고 싶다는
추억을 가지고,
추억만이라도 가지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나무꾼이니까요…

도끼가 가슴을 파고 드는군요.

나무꾼올림

마실

명사.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 (표준국어대사전)

지란지교를 꿈꾸며

지은이: 유안진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라도 좋고 남성이라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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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쳐 주고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나라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자산이 되었을걸.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는 않고, 내친구도 성현같아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눈 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제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많은 아름답게 지니니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은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은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 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이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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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마땅히 볼일이 있어서 마실을 가지는 않았다.
동네방네 이웃집으로 그냥 마실을 갔다.

친구집에 갔더니, 친구는 없고 다른 분이 계시면 그 분과 시간을 보낸다.
친구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할머니이든 상관없다.

편안하게 얘기를 나누다가 무료해지면 주전부리를 내온다.
주전부리가 없으면 밭에서 고구마를 캐어와서 찌기도 하고, 호박을 따와서 부침개를 만들기도 하고, 밥때가 되면 밥을 짓는다.
내온것을 도란도란 같이 앉아서 먹는다. 맛있어서 더 달라고 해도, 과식해서 트림을 길게 해도, 이빨사이에 고추가루가 끼어도 뭐라하지 않는다.
허물이 없고 눈치 볼 것도 없다.

상대에 맞춰서 다양한 놀이를 하기도 한다.
윷이나 장기를 두기도 하고, 보드게임을 하기도 한다.

시간 제약이 없다.
집으로 가지 않는다고 나무라지 않는다.
외부에 볼일 있어서 나가야되면 혼자서 놀고 있으면 된다.
그러다보면 친구집에 또 누군가가 들어온다.
누군가가 그 집 식구일수도 있고, 또 다른 손님일 수도 있다.
반갑게 맞이해주고 또 반복이다.

그런 마실 친구가 있으면 좋겠고,
그런 마실을 평생토록 서로 다니고 싶다.

만두 – 큰이모

다음 생애는 꼭 당신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지은이: 미상

당신 발치에서 내 생애를 보낼 수 있다면…
낮엔 태양 빛으로 밤엔 별빛으로 존재하고 싶습니다.
그 어떤 빛으로든 당신을 비추고 싶습니다.

흔적도 없이 증발해 공기가 되고 싶습니다.
늘 당신 주변 맴돌 수 있게…
당신의 호흡을 통해 당신 몸 속 하나하나 여행하고 싶습니다.
심장도…폐도…

비가 되고 싶습니다.
아파오는 이 사랑에 눈물 짓는 내 맘 당신이 아시도록…
때론 보슬비로… 때론 소나기로…

바다가 되고 싶습니다.
파란 바다와 같이 사랑에 멍든 이 맘 당신이 아시도록
작은 돛단배 위협하듯 출렁이는 폭풍같은 내 사랑이 바다와 닮았으므로…

당신 발치에서 내 생애를 보낼 수 있다면…
세상의 그 무엇이 된다해도 좋습니다.
모래 알갱이가 된다해도…

사랑합니다.
당신의 숨결 하나하나 모습 하나하나 눈빛 하나하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잠시 눈 깜박이는 순간에도 그리운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심장이 멎는 그 순간까지 아니 그 후에도 영원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 보낸 후 밤새 잠들고 싶지 않습니다.
꼬박 당신을 그리며 밤을 지새우고 싶습니다.

무뇌증이고 싶습니다.
당신 떠올리지 않게 그리워하지 않도록

심장이 조여 오는 듯한 이 그리움
당신 보낸 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해요!

다음 생에 태어나면 꼭 당신으로 태어날 겁니다.
다시는 헤어지는 일이 없도록…

 


학생시절 큰이모 집에 심부름 간 적이 있었다
고생했다 먹고가라며 물만두를 끓여서 내왔다

그 당시 봉지만두라는 50개들이 새로나온 것이었는데
한봉지를 다 넣어서 끓였다
만두 구경을 해보지 못했던 나는 몇 번을 국그릇에 덜어서 먹었고
급기야 당신은 솥단지 통채로 갖다 주었다
그렇게 한솥을 다 먹어 치워버렸다

돌아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찬장속 그릇 밑에 숨겨둔 꼬깃꼬깃한 지폐를 주머니에 질러 주셨다
맛있는거 사 먹으라고…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많은 양을 먹었나 싶기도 하고,
제대로 먹으며 크지 못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4월 5일 한식에 산소 가서 잡초와 잡목을 제거하고
돌아오는 길에 당신 집에 들렀다
식사로 내온 쇠고기 국에 밥말아 먹으며
그 당시 만두 얘기를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냐며
당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신은 올해로 일흔이 넘었다
호락호락한 삶이 아니었다
어린 다섯자매를 남겨놓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녀로서
그리고 새로 시집오신 어머니 밑에서 이복동생들
전부 8남매의 장녀로서 멍에가 주어졌다
계모는 어린 다섯자매를 쉽게 대하지 않았다
배워서 뭐하냐며 책과 가방을 갖다가 버리기 일쑤였고
심지어 먹는 것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래저래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다

그 당시 외남독자로 자라셨던 시아버지…
아들이 귀했다, 손주도 귀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당신은 내리 딸 다섯을 낳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갖가지 민간요법을 동원하였고
누군가 귀뜸해 준 숫소의 성기를 먹으면 된다하여
남몰래 부엌에 들어가서 엉엉 울면서 먹었다고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지
당신은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
도합 2남 6녀를 거느리게 된다
지금은 전부 시집장가를 갔고
막내아들 자식의 돌이 지났다
시댁에서 대소사를 챙겨야했던 장남인 남편,
만만치 않았던 시댁삶
본가에서 대소사를 챙겨야했던 장녀인 당신
만만치 않았던 당신삶…

이제 당신은 남편이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 놔두고 먼저 갔다면 혼자서 어떻게 감당했을지…
지나보니 생각할수록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새로 태어나면 내가 남편이 되고,
남편은 아내가 되어서 만나자고 얘기했단다
고마운 것 전부 되돌려주고 싶다고 했단다

당신은 어머니의 어머니처럼 지나오셨습니다
바다와 같은 마음입니다
건강하라고… 제발 건강하라고…
수차례 신신당부를 하며 차에 올랐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뵐 수 있을런지요)

외로움

수선화에게 

지은이: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아기가 탯줄로 모체와 이어져 있듯이
사람은 보이지 않는 외로움과 이어져 있는 듯 하다
자다가도 외로움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게 된다
몸서리 쳐지는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불현듯 낯선 곳에 있음을 느낀다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오면서 생각나는 것은
내 옆에는 누가 있고,
그 옆에는 누가 있고,
그 옆에는 누가 있고,
그 옆에는 누가 있다.
심심하게 위안을 삼는다
그래도 그것은 이를 어쩌지 못한다 
단지 있었던 것 뿐이다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결국 외로움으로 돌아간다

이산부부

50년만에 만난 부부가 있었다.
새파랗게 젊었을때 결혼을 했지만
난리로 인해서
위쪽과 아래쪽으로 나뉘어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각자는 홀홀 단신이라서 혼자서는 힘들었다.
그래서 각자는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낳았다.

그런데,
50년동안 잊지 못하고,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질기고, 질기게 견뎌왔다.

드디어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둘은 재회를 했다.

그리고 말을 잇지못하고 상대방의 눈물만 훔치고 있다.
새파랗던 신랑은 백발이 성성하고, 쪼그랑탱이 얼굴에
이는 듬성듬성 빠졌다.

드디어 남자가 힘들게 말을 건넨다.

“미안…합니다”

그는 계속 그 한마디만 반복했다.
결혼을 했는지, 어떻게 사는지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