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형제

형은, 믿고 따라온 두 동생이 고맙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같이 이끌어주고 있는 형과 잘하고 있는 동생이 고맙다고 했다
막내는, 자랑스런 두 형이 있어서 고맙다고 했다

어제 저녁이다
삼형제는 식사 겸 술한잔 하면서
무교동 어느 술집에 있었다
4시간이 넘도록 한자리에서 술을 마셨다

상당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공감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하고,
마음이 짠하기도 하였다

삼형제가 같은 자리를 마련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들은 수도 중심가에서 반경 5Km내에 있다

항상 바쁜 큰 형은 거의 매일 밤11~12시에 퇴근한다
피곤의 연속인데,
둘째인 내 전화를 받고는
업무를 대충 접고 나온 것이다
탱자탱자하는 막내는 바쁜것은 없지만
짜여진 일과에 답답해한다
놀고 먹는 나는 항상 능력의 반정도만 업무에 투자한다
그 중의 반은 이생각 저생각 하면서 보낸다

그러던 차에
마침 근무지를 옮기는 관계로
얘기 할 겸 자리를 주선한 것이다

모든 얘기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고자 한다

막내가 그랬다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던 때의 영상이 각인되어 있었다
막내는 그 당시 10살 이었다
거꾸로 되짚어보면 당신이 작고하신지 21년이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가게에 갔다가 얘기를 들었다는 것
그리고, 전화를 받고 황급히 나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
이후, 집으로 택시타고 와서 내리자마자 어머님이 울부짖으며 쓰러지셨던 모습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했던 막내가 느꼈던 것이 상당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막내가 무얼 알았을까…그리 여겼었다

형의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당신은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을 했다
교통사고이다 보니 끔찍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다녀온 형은 말을 잊었고,
어쩔 줄을 몰라 집을 나서려했고,
친척들이 이를 만류하였다

나도 그 당시 상황이 각인되어 있다
할머님이 계셨었는데,
먼저보낸 아들을 가슴에 묻고,
그 고통이 심했던지 어떤지
몇 해 지나서 치매를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님의 울부짖음을 결코 잊을수 없다
그 당시 당신의 나이는 37살 이었다
서로 얘기를 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누구 뭐라 할 것 없이 우리는 울고 울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형은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하여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하였다
딱히 뻔했던 집안 사정을 위해
달리 방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님은 당신이 밭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들 공부 시키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게 되었고,
힘들게 농사일과 공부를 병행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형은 순위에 들었으며
S대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듬해 재수를 하였고,
결국 Y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나는 형의 재수시절이 제일 힘들었다고 얘기하였다
재수하는 형은 멀리 서울로 가버렸고,
말썽을 일으키고, 말을 안듣는 막내…
결국 고2였던 나는 집안일을 도와야했고,
상대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시세가 좋아서
농산물이 제값을 받는것이 아니었다
대파 농사를 지었는데,
하루 일당도 안되는 삶의 연속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니
막내녀석이 안절부절을 못한다

형수에게 미안함이 있다
형수는 내가 제대한 지 3일 뒤에 시집을 왔다
신촌에서 신혼 살림을 차렸는데,
때마침 제대한 나는 IMF여파로 취업을 못했고
취업준비를 위해 당분간 형집에 머물러야 했다
싫은 내색하지 않고, 시동생을 받아주었다

기억을 더듬어도 나는 형수에게서 밥상 한반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것 같다
거의 사먹고 다니고,
아니면 직접 라면 끓여먹고 했던 것 같다
챙겨줌을 받지 못한 서운함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그래도 신혼생활의 기쁨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하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애인을 만들어주자고 제안하였다
다들 수긍하는 눈치고
이해가 간다는 모습이다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재미있게 사셨으면 싶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이런 저런 다양한 얘기를 했다
술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결국 취한 우리들은
화이팅을 외치며 서로를 격려하였다

평상시 가족모임이 있어도
말이 별로 없는 삼형제…

그들은 말이 없어도 통할수 있는
이심전심이 있다…

2005년 7월 어느날 씀

목민심서

목민심서

부임길에 오를 때에는 아침에 일찍 떠나고, 저녁에는 일찍 쉬어야 한다.
길을 떠나기 전에 수리(우두머리 아전)에게 일러서 하인들이 먼저 아침식사를 한 뒤에 수령의 아침식사를 올리게 하고 먼동이 틀 때 길을 떠나도록 한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이 목민관으로서 자세, 마음가짐에 대해서 쓴 책이다.
목민관은 지금의 자치단체장과 같은 공직자이나 행정, 사법, 군사 업무를 통합 관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백성을 바로 대면하고, 다스리는 벼슬아치로서 12가지 항목에 6가지의 세부사항으로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장교로서 임관하여 부임하는 시점에 조그마한 서점에서 접하였다.
한자를 해독하지 못하여, 해설 내용 위주로 보았는데
구구절절 좋은 글들이었고, 밑줄 그어 가면서 읽었던 기억이다.
그 중에서 위의 구절을 두고 기억에 새기기로 하였다.

다산은 왜 자신보다 하인들을 먼저 챙겼을까.

우리는 대개 자기 본인 위주로 생각을 많이 한다.
특히 아랫 사람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다고 본다.

주인은 자기가 배고프면 자기를 먼저 생각한다.
갈길이 바쁘면 자기 위주로 서두르고 재촉한다.

하인들은 어떠한가.
하인은 자기가 배고파도 주인이 배고픈지 먼저 생각하고 주인을 챙겨야 한다.
자기는 뒷전이다.
갈길이 바쁘면 일찍부터 준비물들과 부수적인 잡다한 일들을 챙겨놔야 한다.
그러다보면 하인 자기는 항상 뒷전이다.
밥을 못 먹은 일이 허다하고, 늘상 피곤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누가 하인을 신경이나 쓰겠는가.
다산은 그렇게 하인을 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 부하를 나보다 먼저 생각하고, 진심으로 챙길때 부하들은 나에게 어떻게 대하겠는가.
나와 남을 입장바꿔서 생각하고, 미루어서 이해하는 것
역.지.사.지
그것은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책이음 서비스

책이음서비스

 

그간 도서관을 이용할라치면 회원가입을 각각 해줘야 한다.
집 근처를 이용할 때나 회사 근처 이용할때 별도 가입을 해서 불편했다.
이제는 책이음 회원으로 가입하고 나서 공공도서관을 별도 회원 가입절차 없이 이용할 수 있다.
하나의 회원증으로 거주지와 상관없이 전국의 책이음서비스에 가입한 공공도서관 대출을 할 수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공공도서관, 지역대표 도서관을 통합서비스로 묶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하나의 회원증으로 이용하자.

참고사이트: http://book.nl.go.kr/iplls

도서관과 책

우연히 도서관 학습에 관한 책을 보다가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

대학 다닐때 였다
도서관과의 만남은 입학식 하고, 바로였다고 보면 된다

처음에는 내가 가져온 책을 열람실에서 주로 보았다.
그러다가 분류표를 보고, 책을 3권까지 대출 받을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내 도서대출증은 4년 내내 도서관 사서 책상에 놓여있게 되었다
매주 3권씩을 대출했다

거기에는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다.
한 권은 내가 좋아하는 컴퓨터 관련 책이었다
한 권은 문학 관련 책이었다
나머지 한 권은 교양서적이나 지적 호기심을 끌만한 책이었다

그 당시 학교 도서관은
폐쇄적인 도서관체계여서 직원외에는 출입을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서들과 친해졌고,
높은 직위에 있는 분도 알게되어서
안에 들어가서 직접 책을 고르도록 배려해 주었다

한번도 대출해 간 적이 없던 책을 맨 처음 빌려갈때…
그 책 뒤 열람자에 날짜와 이름을 적을때…
그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이 좋았다

졸업할 당시에는 컴퓨터 관련 책을 거의 다 보았다

컴퓨터에 조예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사서는,
자기 고장난 컴퓨터를 나에게 의뢰하였고,
친절히 고쳐주었다
이후, 사서들의 컴퓨터 문제시 죄다 고쳐주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스스로가 잘 나서가 아니라,
책이 만든 것 같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그동안 보아 나갔던 책들을…
순서대로 궤적을 밟아가면
알수 있지 않을까…

토마토 – 거짓말

토.마.토
예전에 토마토 농사를 지은 적이 있다

어른 주먹만한 큼지막한 토마토…
토마토를 보면 맛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수 있을 정도의 안목을 기르는데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당시 토마토 농사 후에는 주로 중간 상인에게 소위, 밭떼기로 넘겼다
계산 방법은 한 그루당 얼마씩 곱해서 전체를 넘기는 것이다
몇 그루인지 일일이 세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그 임무를 나에게 일임하셨다
그런데, 몇 번이고 다시 세어봐도 변변치 않은 금액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고 싶은 작은 바램이었을까…

중간 상인도 검산을 하는 과정이 있었고,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철썩같이 내 의견을 존중하셨고,
상인을 몰아 세우셨다

중간에서 실토를 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겨우 합의가 된 것은 다시 세어보라는 것 이었다

그 임무도 또 다시 나에게 주어졌다
그런데, 그때에도 숫자를 줄이기는 했지만
사실보다 허수를 보태서 둘러대고 말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상인은 그냥 수긍을 하고, 받아들이고 넘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고,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어린학생의 거짓말을 불 보듯 했을
그 상인은 군소리 없이 인정하고 넘어갔다
난 그 비밀을 지금까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상인에 대한 기억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어찌보면 거짓말이라도 해서 좀더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어린학생의 심정을 읽었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속아주는 어른의 아량이었을까…

나는 그 사건 이후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만일, 나에게도 누군가가 거짓말을 한다면
알면서도 속아 넘어 가고 싶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2005년 7월 어느날 씀

막내

“엄마, 사랑해요”
“그래, 나도 사랑한단다”
“저 말썽많이 피워서 키우느라 힘드셨죠…
농사지으시며 얼마나 힘드셨어요”

어머니는 막내를 낳은지 31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셨다
평상시 통화는 채 1분도 안되어서 끝났지만, 이날은 시간 제약없이 통화를 했다

얼마전 태어난 둘째 아이의 아빠인 막내아들은 어리광을 부렸다
그날 밤 어머니는 잠을 설치셨다고 한다
아마도 벅찬 감동에, 기쁨에 그랬으리라…

막내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은 철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이 말에 공감한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지만도 않은 듯 하다

때로는 동생은 윗사람의 입장에서 조언을 할수도 있고,
형은 아랫사람처럼 충고를 따를 수도 있다
아니면 환경이 인격을 변화시켜서
동생이 오히려 형보다 사고나 인생 폭이 깊을 수도 있겠다

지난 화이트데이,
퇴근시간 즈음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둘째 형, 저녁 같이 먹자”

뜬금없는 전화였지만 반가웠다
녀석은 큰형 한테도 전화를 한 듯 하다
일이 바쁜 형은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회사 근처 해장국 집으로 갔다
소주를 마시며 지난 얘기들을 했다
나는 예전의 어려웠던 시절을 맞추어 얘기를 풀어나갔다

“고등학교 시절, 가출했을 때 어디에 있었니?
그때 목사님, 어머니, 나, 네 친구들이 너 찾다가 포기했다”

지질이 말 안듣던 녀석을 몇대 때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 날 막내는 사라졌고, 3박 4일 동안 보이지 않았다
이후 난 때리는 것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이 생겼고,
누구에게도,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형, 실은 그 당시 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받쳐주지 못하는 가정 현실이 불만이었어…
현실을 받아 들일 수가 없었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부족함 없이 자랐던
막내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 생활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너 혹시 아는지 모르겠구나.
겨우내내 얇은 잠바 한벌로 몇년을 지내오신 어머니를 본 적이 있니…”

어머니는 하루 온종일 뙤약볕 벌판에서 일해서 인건비도 안나오는 2~3만원을 벌었다고
그러면 넌, 그 당시 5천원이나 하는 음악테이프를 엄청나게 사댔다
그렇게 사 모은것이 라면박스로 3박스가 넘었다

“아무렇지 않게 명품 기타를 사댔고, 부수기도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락밴드에 가입해서 그런 생활을 계속했었지
그러다가 대학생활도 때려치웠지…”

녀석은 크게 후회하는 기색이다

“형, 그때 정말 철이 없었어…
어머님이 그런 줄도 몰랐어”

고개를 떨군다

“그때 나도 얼마나 힘들었는줄 아니
큰 형은 재수한다고 서울로 갔고,
너는 사고 치고 말썽 피우고…”

나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실질적인 가장이었고,
가장의 역할을 다해야했다
솔직히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들판으로 나가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졸업반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농부의 삶,
그것이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막막해서 앞이 보이지 않았고,
살기위해 했던 삶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고,
이제 삼형제는 서울 수도 한복판에서
직장거리도 멀지 않은 곳에서 각각 근무하고 있다

“형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단다.
시골에서 삽, 호미를 들고 일해야 할 내가
어울리지 않게 양복에 넥타이라니 말이다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않니?”

“나는 큰형, 작은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세상에 형 같은 사람들 없더라구…”

이렇게 저렇게 잔을 기울이며 형제는 취해갔다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대화의 주제는 나와 관련 된 것으로 바뀌었다.
넘어간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면서도 대화는 이어졌고,
중간에 내가 내리는데, 녀석이 웃으며 응원한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낸다
누군가와 오랜동안 통화를 하고 싶은가보다…

(추가설명)
막내는 대학생활 청산 후 군대를 갔다.
제대 후 시험을 치러 소방공무원이 되었다.
소방출동, 응급구조대원으로 몇 년을 근무했다.
현재는 ㅊㅇㄷ에서 근무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출퇴근시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볼라치면 내 동생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2005년 3월 어느날 씀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사진 찍는 기회가 많아졌다

기술발전으로 해상도는 점점 높아져 간다
사진을 찍을라치면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바로 얼굴에 난 흉 자국 때문이다

좌측, 우측에 가늘고 기다랗게 줄 자국이 있다
턱 바로 아래에 몇 바늘 꼬맨 자국이 있다
처음 대면하는 사람은 쉽게 보아 넘기기 힘들다
재밌게도 주먹쓰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그것과 관련된 사건을 물어오기도 한다
꽤나 사고치고 놀다가 생긴 것인양…

가물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것은 전부 시골에서 얻은 것이다

그 당시 어릴 적에는 딱히 놀이터가 없었다
농터가 놀이터요, 농사일이 놀이였다
그래서인지 아주 어릴 적부터 농사일을 거들었다
작은 몸집에 하우스 일을 하려니 힘이 부쳤다
비닐하우스는 속이 빈 쇠 파이프로 짓고,
그것들끼리 철사로 이어준다
그리고, 그 위에 비닐을 씌워서 만든 것이다

문제는 철사에 있었다
서투른 아이가 철사로 작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찔리기도 하고, 긁히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그러다가 얼굴에 예리하게 선이 그어진다

요즘에는 흉이 남지않는 연고가 흔하다지만
그 당시 부모님은 이에 관심도 없고,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냥 아물기를 기다리며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이다
장난기가 다분했던 나는 얌전히 아물기를 기다리지 않았고,
구르기도하고, 물도 묻히고, 덧 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덕지가 떨어지면서 흉이 되어갔다

신체가 점점 커지면서 그것도 커져 갔다
그것이 나에게 핸디캡이 될 수도 있었다
대면할때 분명히 거부감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떳떳하게 행동했고, 많은 노력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회사 면접을 보거나,
여자분과 선을 보거나,
사람들을 만나볼 때 자신감있게 행동했다

나는 그것이 핸디캡이 아닌 자랑스런 표상이 되게 하고 싶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성형을 통해 멋지고 예쁘게 만들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인격과 진심은 인위적으로 만들수가 없기 때문이다

 

Helene : Dans ses grands yeux ve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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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ilation Hélène (샹송 17곡)

[embedyt] https://www.youtube.com/watch?v=hY9UkulR-TU[/embedyt]

00:00 Je m’appelle Hélène
03:44 Dans ses grands yeux verts
06:38 Pour l’amour d’un garçon
09:49 Ce train qui s’en va
13:38 Peut-être qu’en septembre
17:53 Trop de souvenirs
21:07 Amour secret
24:35 C’est trop dur d’être une fille
27:34 Le miracle de l’amour
31:13 Moi aussi je vous aime
35:15 Imagine
39:51 Pauvre blues
42:38 Sous le soleil
45:39 Imagine (Live)
50:04 Partir avec toi
52:41 À force de solitude
56:05 Sa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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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댄 소녀의 얼굴로 통기타를 메고 있는
금발머리에 밤색 눈, 맑은 목소리의 소녀를 처음 만난 것은
90년대 군대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군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삶을 놓을까 심각했었을때
우연히 들른 파주 금촌,
허름한 레코드샵 구석퉁이에서 먼지가 쌓여있던 카세트 테이프가 눈에 띄였다.

앨범 테이프는 인물보다도 그 자체가 아름다웠다.
그 당시 대부분의 카세트 테이프 외관은 검정색이거나 흰색이고, 볼품없는 라벨지가 붙어있었다.
엘레느 앨범은 오렌지 색이었다. 표지와 같이 그 자체가 아름다웠다.

그 당시 가격도 2~3배는 비쌌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녁 식사비를 아껴서 샀더랬다.
들어보니 곡이 너무 좋아서 테이프가 닳고 닳아 늘어질때까지 들어봐야겠다 생각했다.
무한 반복을 했었는데,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하는지 늘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가수는 현재 주름지고, 연륜이 느껴지나
삶이 힘들때 위로가 되어주는 그 당시 엘레느를 만나보기를 진심으로 추천한다.

 

산과의 대화 – 모든 것을 버리라

산과의 대화

지은이: 박남규

네 것은 하나도 없다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내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네

재물, 자동차, 직장, 친구, 지식, 명예 등
심지어 가족도 내 것이 아니라고 하네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라고 하네

욕심을 갖지 말라고 하네
소유를 하지 말라고 하네
모든 것을 버리라 하네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라고 하네

산이 그랬다
네가 있기 훨씬 전부터 그렇게 있었다고…

설령 네가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한들,
그렇게 있었던 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욕심갖지 않으려 한다
나는 소유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그렇게 있도록 버려야 한다
그냥, 그렇게 있도록 놔두어야 한다

 


오래전 지리산 종주할 때 일이다.
고민과 복잡한 생각이 있던 차에 3박 4일을 주구장창 산을 탔더랬다.
산이 거짓말처럼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신기했다.
내면의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조용히 그렇게 답을 해주었다.

프레임: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우리는 인생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그보다
내가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세상을 달리본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기회를 보는 사람, 어려움을 보는 사람이 있다.
좋은 프레임을 가지고 있어야 좋은 것을 본다.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접근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삶으로부터 얻어내는 결과물들은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프레임은 질문에 의해서 결정된다.
1. 높은 곳에서 보고 있는가
2. 다르게 보고 있는가
3. Driven(몰입) 되어 있는가

지금 내 프레임은?

저자인 최인철교수의 강의를 링크한다.

[embedyt]https://www.youtube.com/watch?v=40rgKgtXv7o[/embed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