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 꿈 YongPil Cho : The Dreams(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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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찿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 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찿아 여기에
꿈을 찿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길을 왔는데
이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찿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땐 차라리 나홀로 눈을 감고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이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슬퍼질땐 차라리 나홀로 눈을 감고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조용필 13집 The Dreams 앨범 타이틀 곡.
비행기에서 만든 곡으로, 가장 아끼는 노래라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때되면 돌아갈 고향이 있다.
바로 하늘이다.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돌아갈 곳.
그리말하지만 우리네 삶은 늘상 객지를 떠돈다
그 소풍이 힘든 여정이다.
이 노래를 안 시점은 도시에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혼자서 삶을 견디며, 지나야 했던 시절
되돌아보며 삶을 추스려본다.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는가.

궤적

우리의 만남은

지은이: 용혜원

우리의 처음 만남은
오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곳에서인가
서로를 모른 채
스쳐지나가듯 만났을지도
우리는 알 수는 없습니다

그때는
서로가 낯모르는 사람으로
눈길이 마주쳤어도
전혀 낯선 사람으로 여겨
서로 무관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의 만남 속에
마음이 열리고
영혼 가득히 사랑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만남이
우리의 사랑이

이 지상에서
꼭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만남은
기쁨입니다 축복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숨김없이
쏟아놓을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눈동자 속에
그대의 모습이 있고
그대의 눈동자 속에
나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보다 놀라운 것은
우리들의 영혼 속에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서로의 영혼을 위하여
그 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만남이 이 글을 읽는이마다 있어지기를 소망하며…

 


함수는 관계이며, 대응이다.
궤적은 시간축과 공간축을 놓고 지나간 함수이다.

나의 과거를 알려면
지나온 궤적을 따라가면 된다.
그러다보면 누군가 만남을 알 수 있겠다.

상대는 일차 함수, 내 궤적 함수와 맞춰보자
그 속에는 다양한 만남이 있다.
때로는
아니 만나기도 하고,
만났으나 멀어저 가기도 하고,
다시 인연이 되기도 한다

영겁으로 보면 찰나와 같은 접점이지만
우리 삶으로 보면 평생이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내 궤적을 돌아보면 어떨까…

 

수학백과: 함수란 무엇인가

어머니 – 그리움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지은이: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 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줄만―

한밤 중 자다깨어 방 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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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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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시세끼라는 예능 프로를 즐겨보고 있다.
사실 내용은 별거 없는데, 세끼니를 아궁이에 솥단지 걸고, 직접 밥이며 반찬을 해서 먹어야 한다.
반찬 재료는 집에서 가까운 밭에 심겨진 재료들을 사용하면 된다.
가끔은 단체로 늦잠을 자서 출연자들이 미안해하고 아점으로 때워야 할때도 있지만, 우리는 애교로 봐주고 넘어간다.
출연자들은 약속된 촬영일이 지나면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 일상적인 삶을 지낼 것이다.
예능은 일종의 일로써 짧은 기간 고생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삼시세끼 자체가 삶이라면 어떨까.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여자로서 살아야 했고, 모진 풍파를 견디며 지나야 했던 삶이 있다.
바로 어머니의 삶이다.

당신은 21살에 중매쟁이에게 속아서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왔다.
비록 계모의 괴롭힘에 초등학교를 온전히 졸업하지 못했지만, 나름 먹고사는데는 넉넉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시집은 그렇지 않았다.
잘 사는 신랑집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쌀독을 열어보니 몇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양이었고, 쌀자루가 아닌 되로 조금씩 꾸어다가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딸린 식솔들이 많았다.
그당시 아버지는 둘째였지만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였다.
장남은 분가하였고, 딸린 식솔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3명이 있었다.
당신은 비록 굶더라도 삼시 세끼를 그렇게 해서 식솔들을 해먹였다.

시집살이도 만만치 않았다.
망한 양반 집안의 귀한 딸이었던 할머니는 몸종을 데리고 시집을 왔지만
넉넉치 않았던 세간살이로 인해 몸종을 돌려보냈다.
그렇다고 살림을 직접 하지않고,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아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당신이 시집온 그 나이에 시어머니는 50살 즘 되었다.
젊은 시어머니는 매사 들들 볶기 일쑤였고,
심지어 같이 밥상을 못하도록 나무랬단다.
지금도 당신은 우리와 같이 겸상을 안한다.
우리가 다 먹고나서야 식사를 한다.

시집살이가 어려우면 남편복이라도 있어야했다.
남편은 효심 지극하고, 착했지만 아내를 못챙기는 술좋아하는 바보였다.
부모님께 빨래비누 살 돈도 남기지 않고, 생활비를 전부 드려서 당신은 빨래 양도 많은데 제대로 못해 양잿물을 사용해야 했다.

지금 같으면 차라리 헤어지고 말터인데, 인연을 끊기에는 자식의 인연이 강했었나보다.
어느덧 세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고,
나름 커가면서 생활이 안정되어 갔다.

그것도 잠시
당신이 37살 되던 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남편을 여의게 된다.
혼자서 농사일을 하며, 삼형제를 키우게 된다.

그때부터 호미가 닳아 갈고리로 변해가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정도로
새벽부터 밤 늦도록 논밭 일을 했다.
그렇게해서 삼형제를 온전히 키워냈다.

이제 맘편히 몸편히 즐기면서 여생을 지내면 좋을텐데…
어느덧 자식의 자식들을 봐주느라 자기 생활이 없다.

돌아보니 어느덧 강산이 4번째 바뀌게 된다.
청춘이 갔다. 인생이 갔다.
남은 것은 꼬부라진 허리, 틀니와 주름 뿐…

어머니! 당신은 그리움입니다.
멍에는 벗고, 영원히 젊은 엄마로 살아주세요.
천분지일도 보답하기 어렵겠지만 남은 기회를 주세요.

명사. 제 값어치 외에 거저로 조금 더 얹어 주는 일. 또는 그런 물건 (표준국어대사전)

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은이: 류시화

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그 하루를 정원에서 보내리라

허리를 굽혀 흙을 파고
작은 풀꽃들을 심으리라

내가 떠나간 뒤에도
그것들이 나보다 더 오래 살아 있도록

아마도 나는 내가 심은 나무에게 기대리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새와 곤충들 또한 나처럼 그 나무에
기대는 것을 바라보리라

그리고 어쩌면 나처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지막으로 흙 위로 난 길을 걸으리라

걸으면서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진실했던 때를 기억하리라

아마도 그것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되리라
그 어느 날보다 후회하지 않는.

 


우리네 시장에서는 덤이라는 것이 있다.
파는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겠지만 사는 입장에서는 더 얻어가니 좋을 수 있겠다.
그 맛에 장을 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속에 인생이 있다.

덤은 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삶에도 있다.

군대시절 심신이 고단하고, 특히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 커서 삶을 놓으려고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결국 실행은 하지 못했지만, 갑자기 그런 깨달음이 들었다.

내 인생 수업은 20대에 종쳤고,
이후 인생은 덤으로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신적인 존재에 물어보거나, 사주단자에 들어있었는지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덤으로 사는 인.생.

덤은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짜로 여겨 질 수 있겠으나
결코 공짜가 아니다.
오히려 더 잘 요긴하게 써야 한다.

모든 날들 모든 순간들이 행복이다. 허투로 쓸 수 없다.
내게 덤 이후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
나에게 덤의 양이 얼마나 주어졌는지 모르겠다.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끝나는 시점에 덤을 얻어서 고마워했고, 덤을 알차게 잘 사용했노라 말해보자

199X년 군대일기장 들춰봄

아침이면 가장 먼저

아침이면 가장 먼저

지은이: 이준호

아침이면 가장 먼저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나를

살짝 간질여 깨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커튼 너머
아침 햇살이 넘쳐나고 있음을
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별다른 얘깃거리는 아니어도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눈 비비며 들으면 좋겠습니다

또 날마다 그런 재미로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당신이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내 하루의
처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종일토록 당신이 내 안에 있어
내가 당신을 호흡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또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내가 습관처럼 당신을 반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입버릇처럼 왔느냐고
물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이면 날마다 가장먼저
당신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잣대

아름다운 만남을 기다리며

지은이: 이용채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과 만나고 싶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낯선 얼굴로
그들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겠지만

어차피 우리들의 삶은 서로가 만나고 헤어지며
그렇게 부대낄 수밖에 없는,
서로가 큰 삶의 덩어리들을 조금씩 쪼개어 갖는 것일 뿐.

누구나가 그들 나름대로의 자를 들고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서로를 재고 있겠지만

언제나 보이는 것에 익숙해진 오늘조차
나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지.

보이는 것은 쉽게 변할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조차 추한 모습일 수 있겠지만
보이는 것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의 껍데기일 뿐.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일이 어쩌면
가장 힘겨운 일일 수 있기에 사랑이 더욱 값진 것이겠지만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마저 때로는 거짓일 수 있고
그에게 슬픔일 수 있기에

나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위해
더욱 노력하며 살아야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판단하는 잣대를 가지고 있다.

학력, 외모, 재력 등
상대를 대할때 나도 모르게 그런 잣대를 들이댄다.
잣대의 기준 수치에 도달하지 않으면
선입견을 가지고 무시하거나 배제시켜 버린다.

내 잣대는 군대 시절 전후로 달라진다.

입대 전에는 여자를 대할 때나 소개팅이 들어올 때 마다
배움의 정도(대학), 얼굴(무조건 이쁨), 몸매(44kg), 키(160cm)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보고 사귈지 말지 걸러내었고,
하나라도 빠질라 치면
아예 처음부터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입장 바꿔서 내가 연예인급처럼 잘 나가는 것도 아닌데
어딘지 모를 오만함이 있었던 듯 하다.

그러던 중 군생활에서 숱하게 많은 생과사 문턱을 오가면서
불현듯 잣대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죽음앞에서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 도달하였고
이후에는 
잣대를 없애고, 있는 그대로 인격을 보고자 하였다.

우연히 인사를 나누거나 소개팅을 할 때
위와 같이 물어보던 습관들이 없어졌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앞으로 삶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한지…
최소 3번은 만나서 확인해보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게 되었다.

그 사람 내면을 보기 위해서 집중하였다.
배움은 못하나 지혜롭고, 영리하며
발전적으로 인생을 개척해가는 여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만남들이 쌓여갈수록 내 인생이 윤택해지고, 성장함을 느꼈다.

무엇이 정답이고, 옳은 것인가는 의미가 없을 듯 하다.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르는 시점에서
옆에 남아있는 그녀를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생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카세트 테이프와 플레이어를 빗대본다
우리의 일상은 테이프처럼 공간정보와 시간과 함께 저장된다

사용기한이 지나면 폐기되는 테이프가 아니라
무기한 사용할 수 있는 테이프이다

플레이어는 자신이다
공간, 시간정보와 함께 그곳에 있었던 자신말이다

재생버튼을 누르면 영상과 음악이 흘러나오듯이
자신이 해당공간을 지나가며,
이전 시간정보와 함께 재생된다

어른이 되어서 고향집에 갔을때
어릴 적 뛰어놀던 모습이 재생된다

맛있는 음식점을 지날때면
누군가와 같이 식사했던 모습이 재생된다

어느 공원에 앉아 있다보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고, 속삭였던 모습이 재생된다

MP3를 듣다보면
누군가와 같이 흥얼거리던 모습이 재생된다

비가 내리면
빗방울 속에서 지난 모습이 재생된다

이렇듯 물건 하나에도, 장소하나에도
스쳐갔던 모든 곳에 정보가 저장된다

내가 움직일때마다 하나 하나씩 재생된다

 

삼형제

형은, 믿고 따라온 두 동생이 고맙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같이 이끌어주고 있는 형과 잘하고 있는 동생이 고맙다고 했다
막내는, 자랑스런 두 형이 있어서 고맙다고 했다

어제 저녁이다
삼형제는 식사 겸 술한잔 하면서
무교동 어느 술집에 있었다
4시간이 넘도록 한자리에서 술을 마셨다

상당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공감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하고,
마음이 짠하기도 하였다

삼형제가 같은 자리를 마련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들은 수도 중심가에서 반경 5Km내에 있다

항상 바쁜 큰 형은 거의 매일 밤11~12시에 퇴근한다
피곤의 연속인데,
둘째인 내 전화를 받고는
업무를 대충 접고 나온 것이다
탱자탱자하는 막내는 바쁜것은 없지만
짜여진 일과에 답답해한다
놀고 먹는 나는 항상 능력의 반정도만 업무에 투자한다
그 중의 반은 이생각 저생각 하면서 보낸다

그러던 차에
마침 근무지를 옮기는 관계로
얘기 할 겸 자리를 주선한 것이다

모든 얘기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고자 한다

막내가 그랬다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던 때의 영상이 각인되어 있었다
막내는 그 당시 10살 이었다
거꾸로 되짚어보면 당신이 작고하신지 21년이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가게에 갔다가 얘기를 들었다는 것
그리고, 전화를 받고 황급히 나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
이후, 집으로 택시타고 와서 내리자마자 어머님이 울부짖으며 쓰러지셨던 모습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했던 막내가 느꼈던 것이 상당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막내가 무얼 알았을까…그리 여겼었다

형의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당신은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을 했다
교통사고이다 보니 끔찍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다녀온 형은 말을 잊었고,
어쩔 줄을 몰라 집을 나서려했고,
친척들이 이를 만류하였다

나도 그 당시 상황이 각인되어 있다
할머님이 계셨었는데,
먼저보낸 아들을 가슴에 묻고,
그 고통이 심했던지 어떤지
몇 해 지나서 치매를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님의 울부짖음을 결코 잊을수 없다
그 당시 당신의 나이는 37살 이었다
서로 얘기를 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누구 뭐라 할 것 없이 우리는 울고 울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형은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하여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하였다
딱히 뻔했던 집안 사정을 위해
달리 방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님은 당신이 밭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들 공부 시키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게 되었고,
힘들게 농사일과 공부를 병행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형은 순위에 들었으며
S대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듬해 재수를 하였고,
결국 Y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나는 형의 재수시절이 제일 힘들었다고 얘기하였다
재수하는 형은 멀리 서울로 가버렸고,
말썽을 일으키고, 말을 안듣는 막내…
결국 고2였던 나는 집안일을 도와야했고,
상대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시세가 좋아서
농산물이 제값을 받는것이 아니었다
대파 농사를 지었는데,
하루 일당도 안되는 삶의 연속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니
막내녀석이 안절부절을 못한다

형수에게 미안함이 있다
형수는 내가 제대한 지 3일 뒤에 시집을 왔다
신촌에서 신혼 살림을 차렸는데,
때마침 제대한 나는 IMF여파로 취업을 못했고
취업준비를 위해 당분간 형집에 머물러야 했다
싫은 내색하지 않고, 시동생을 받아주었다

기억을 더듬어도 나는 형수에게서 밥상 한반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것 같다
거의 사먹고 다니고,
아니면 직접 라면 끓여먹고 했던 것 같다
챙겨줌을 받지 못한 서운함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그래도 신혼생활의 기쁨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하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애인을 만들어주자고 제안하였다
다들 수긍하는 눈치고
이해가 간다는 모습이다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재미있게 사셨으면 싶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이런 저런 다양한 얘기를 했다
술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결국 취한 우리들은
화이팅을 외치며 서로를 격려하였다

평상시 가족모임이 있어도
말이 별로 없는 삼형제…

그들은 말이 없어도 통할수 있는
이심전심이 있다…

2005년 7월 어느날 씀

도서관과 책

우연히 도서관 학습에 관한 책을 보다가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

대학 다닐때 였다
도서관과의 만남은 입학식 하고, 바로였다고 보면 된다

처음에는 내가 가져온 책을 열람실에서 주로 보았다.
그러다가 분류표를 보고, 책을 3권까지 대출 받을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내 도서대출증은 4년 내내 도서관 사서 책상에 놓여있게 되었다
매주 3권씩을 대출했다

거기에는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다.
한 권은 내가 좋아하는 컴퓨터 관련 책이었다
한 권은 문학 관련 책이었다
나머지 한 권은 교양서적이나 지적 호기심을 끌만한 책이었다

그 당시 학교 도서관은
폐쇄적인 도서관체계여서 직원외에는 출입을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서들과 친해졌고,
높은 직위에 있는 분도 알게되어서
안에 들어가서 직접 책을 고르도록 배려해 주었다

한번도 대출해 간 적이 없던 책을 맨 처음 빌려갈때…
그 책 뒤 열람자에 날짜와 이름을 적을때…
그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이 좋았다

졸업할 당시에는 컴퓨터 관련 책을 거의 다 보았다

컴퓨터에 조예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사서는,
자기 고장난 컴퓨터를 나에게 의뢰하였고,
친절히 고쳐주었다
이후, 사서들의 컴퓨터 문제시 죄다 고쳐주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스스로가 잘 나서가 아니라,
책이 만든 것 같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그동안 보아 나갔던 책들을…
순서대로 궤적을 밟아가면
알수 있지 않을까…

토마토 – 거짓말

토.마.토
예전에 토마토 농사를 지은 적이 있다

어른 주먹만한 큼지막한 토마토…
토마토를 보면 맛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수 있을 정도의 안목을 기르는데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당시 토마토 농사 후에는 주로 중간 상인에게 소위, 밭떼기로 넘겼다
계산 방법은 한 그루당 얼마씩 곱해서 전체를 넘기는 것이다
몇 그루인지 일일이 세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그 임무를 나에게 일임하셨다
그런데, 몇 번이고 다시 세어봐도 변변치 않은 금액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고 싶은 작은 바램이었을까…

중간 상인도 검산을 하는 과정이 있었고,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철썩같이 내 의견을 존중하셨고,
상인을 몰아 세우셨다

중간에서 실토를 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겨우 합의가 된 것은 다시 세어보라는 것 이었다

그 임무도 또 다시 나에게 주어졌다
그런데, 그때에도 숫자를 줄이기는 했지만
사실보다 허수를 보태서 둘러대고 말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상인은 그냥 수긍을 하고, 받아들이고 넘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고,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어린학생의 거짓말을 불 보듯 했을
그 상인은 군소리 없이 인정하고 넘어갔다
난 그 비밀을 지금까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상인에 대한 기억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어찌보면 거짓말이라도 해서 좀더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어린학생의 심정을 읽었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속아주는 어른의 아량이었을까…

나는 그 사건 이후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만일, 나에게도 누군가가 거짓말을 한다면
알면서도 속아 넘어 가고 싶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2005년 7월 어느날 씀